blinking lights

그 때가 아마 1995년도 중반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.
20년동안 단 한번의 움직임도 없이 살아오던 촌놈녀석이 선배들의 권유에 가볍게 고민하고 변변한 짐하나 챙길것도 없이 상경한 것이다.
지금의 나라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그 당시의 나로선 선배가 최고였으니까...
다행스럽게 회사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기거 할 수 있었고 (말이 숙소지 실은 합숙소에 가까운...) 지방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가져 볼 만한 수도 서울에 대한 동경도 풀어낼 수 있었으니 당시엔 복잡한 마음 없이 하루 하루가 즐거웠다.
그렇게 첫 국민연금의 직장 생활은 시작되었고 팀의 막내로 뒤돌아 볼 시간없이 1년은 훌쩍 지나갔다.
어느 정도 프로젝트가 안정권에 들어서자 회사에서는 출퇴근을 권했고 내 몸 역시 더이상의 숙소 생활은 견딜 수 없을정도가 되어 그 뜻에 따르게 되었다.
그간의 생활패턴과 전혀 다른 9 to 6 의 생활은 피폐해졌던 몸을 이내 정상의 궤도에 올려놓았지만
제대로 된 친인척 하나 없는 타지에서 퇴근 후 생활이란건 역시 즐거울리 만무했다.
(아마도 그때부터 혼잣말로 중얼거리거나 머리속으로 말하는 버릇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.)
어느날 퇴근후 집에 돌아와 TV 내용에 대해 벽과 얘기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
이러다가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밖으로 뛰쳐 나왔다.
첫번째 탈출은 그냥 그렇게 집 주위를 배회하다 돌아왔지만
두번째 시도에서 부터 무엇인가 큰 대의를 가지고 있는것 마냥 근처의 술집을
하나씩 탐방해 나가기 시작했다. (당시 살던곳이 합정동이라 홍대가 주 무대가 되었다.)
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다니길 두달 즈음 되었을 때
난 한곳의 단골이 되었고 무료했던 퇴근 후를 이겨내기 위한 모험은 끝이 났다.
그 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은 계속 흘렀는데
더 없이 눈을 행복하게 해줬던 불빛과
귀를 먼저 잠들게 만들어 주던 밴드의 목소리,
영원히 목마름을 잠재워 줄 것 같던 맥주의 느낌이 아직도 전해지는 것 같다...